전시장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비정형의 프레임과 함께 각기 다른 밀도와 선명도를 지닌 이미지들이 병치되어 있다. 모두 식물의 일부를 담고 있으나, 일상적 스케일을 벗어난 조건 속에서 그것이 어떤 식물인지 특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본래의 모습에서 변화된, 마르고 변색된 상태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그러나 이 작업에서 식물의 정체를 식별하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식물은 어떤 상징이나 분석을 위한 표본이 아니라, 관찰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하나의 피사체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확대는 익숙한 대상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흔든다. 붉은토끼풀이나 명아주, 억새풀처럼 주변에서 흔히 보아온 식물의 조각들이 예기치 않은 세부를 드러내는 순간 경이로움과 함께 불편한 감각이 교차한다. 그런데 이 과잉된 디테일의 표면은 어딘지 모르게 평면적인 인상을 자아낸다. 반면 추상적 이미지들은 대상에 매우 근접한 시선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먼 풍경을 응시하는 듯한 낯선 거리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역설적 감각은 고배율 렌즈가 지닌 물리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배율이 높아질수록 피사계심도는 얕아지고, 한 번에 포착 가능한 시야 역시 극도로 제한된다. 이는 대상의 전체를 한 번에 파악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명징한 이미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초점과 위치에서 수집된 수많은 데이터의 합성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자동화된 소프트웨어의 힘을 빌리지만, 결코 완벽한 결과를 담보하지 않으며 수많은 왜곡과 오류를 동반한다. 결국 반복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개입, 즉 이어 붙이고 자르고 수정하는 행위는 필연적이다. 사실을 충실히 기록하려는 시도로부터 출발하는 이미지가 점차 허구성을 띠게 되는 지점이다.

시간, 데이터, 노동이 집약된 이미지들은 다시 전시장에서 해체된 상태로 제시된다. 통합된 전체로의 몰입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합성과 구성의 흔적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를 가시화하는 장치 중 하나는 프레임으로, 단순한 마감이나 보호의 틀을 넘어 디지털 데이터가 물질적 대상으로 전환되는 지점을 부각시킨다. 화면 속에서 무한히 증식하고 변형될 수 있었던 데이터는 인화지와 프레임이라는 물질을 만나는 순간 고정되고 재단된다. 이미지의 완결된 상태처럼 규정되어 온 전형적 사각형의 틀과 달리, 이 작업의 비정형성은 카메라의 이동 경로를 따르거나 합성 과정에서 형성된 형태를 모방한다. 이는 이미지가 특정한 경계에 의해 한정되지 않고, 언제든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촬영과 합성,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 속에서 이미지는 하나의 완결된 장면이 아니라 선택과 개입이 축척되어 가는 상태를 드러낸다. 이 전시의 제목 Latent(잠재적인)는 대상에 내재된 속성뿐 아니라, 그것을 가시화하는 광학적·기계적 조건 속에서 발현되는 다양한 상태를 포괄한다. 잠재성은 관찰과 재현, 제시의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변이하고 분기하는 이미지의 가능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