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솔지는 개인적인 경험과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작업적 연구와 상상의 도구로 삼아 ‘몸’을 둘러싼 동시대적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발화해왔다. 보안여관(2021), 을지로의 SHIFT(2020)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작가는 의학과 과학에서 쓰이는 실험의 형식을 빌려 몸과 신체 기관에서 벌어지는 증상, 그리고 질병으로 인한 외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하여 이를 개개인의 정체성과 매개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처럼 지난 몇 년간 안솔지의 작업은 건강하지 못한 몸이 의학 기술 안에서 어떻게 분류되고 납작하게 파악되는지를 논하면서[1], 다양하고 개별적인 몸이 외부 세계와 맺는 관계와 역할에 관해 이야기했다. [2] 이는 궁극적으로 몸을 둘러싼 미적 논의들과 함께 개인과 집단, 정상과 비정상 같은 이원론적 사고에 대해 대안적인 태도를 보여주고자 하는 작업적 시도였다.
최근 안솔지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통과하며 물리적 상처와 회복, 생명과 여성에 대한 서사를 직접 경험했다. 작가는 이 서사를 여성의 몸을 둘러싼 사건이자 증상 자체로 파악하며, 그가 견지해온 미학적 목표를 다시금 추동한다. 그는 질병의 외상을 관찰하던 것에서 시점을 이동해 보다 깊숙한 내상에 주목한다. 출산과 육아에서 오는 호르몬의 변화, 그로 인한 감정 기복과 내면의 혼란은 작가에게 예측할 수 없는 신체적 내상으로 이해되는 동시에 또 다른 세계가 생성되는 고통스럽고 창조적인 시간이 된다. 그는 이전 세계와의 분명한 단절과 새로운 세계의 생성을 적극적으로 들여다 보면서, 그 안에서 변화하는 몸과 시공간을 재구조화하는 작업을 ‘코스모스 리캐스팅(Cosmos Recasting)’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작업은 기존 안솔지의 작업에서 나타났던 질병에서 회복되는 일시적인 몸에서 보다 확장되어, 여성의 몸이 갖는 어쩌면 가장 긴 호흡의 증상이자 반드시 달성해내야하는 리캐스팅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여성은 오랫동안 그림자 안에서 고유한 세계를 구축해왔다. 미술 안에서 이루어진 그 실천 중 하나는 분명 자수이고, 그와 같은 맥락에서 안솔지가 자수를 이번 작업의 주요 작업 방식으로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자수는 그의 작업 안에서 그 특유의 수공예적 성격과 더불어 타 재료와의 결합, 개인의 기억,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조형을 획득한다. 작가는 임신과 육아의 기간 동안 이전에 주로 만졌던 레진, 아크릴, 폴리카보네이트와 같은 산업적 재료를 다룰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루게 된 재료는 필연적으로 종이와 색연필이라는 기본적이고 안전한 재료였고, 10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했던 드로잉을 이번 전시에서 다시 자수로 옮겼다. 그에게 드로잉과 자수는 이전 설치 작품들에서 필요했던 공동 작업을 생략할 수 있는, 오로지 단독으로 완성할 수 있는 매체였다.
전시장에는 자수 이외에도 작가가 기존에 사용하던 아크릴, 복층 폴리카보네이트, 레진과 같은 투명 혹은 반투명한 재료들이 여전히 주요하게 눈에 띈다. 〈시그마〉(2024)는 작가가 그린 자동기술적 드로잉 작업들 중 몇 가지를 골라 얇은 천 위에 자수를 놓아 옮기면서 비정형적 추상의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복층 폴리카보네이트에 실로 연결시켜 완성한 작품이다. 그리고 폴리카보네이트의 빈 공간을 색이 있는 반투명의 레진으로 채워 자수의 추상 이미지들과 층위를 형성하며 공명하도록 했다. 다른 원형의 아크릴 관 형태로 된 작업에는 아이를 돌보며 관찰하던 장난감과 과일의 줄기 등을 넣고 레진으로 굳혀서 꽉 찬 액체 속에 사물이 잠긴 듯 보이도록 제작했다. 또 한편에 자리한 〈팔레트〉(2024)는 아이소 핑크를 깎아 내부가 보이는 조각을 만들고, 그 안에 스크린을 넣어 작가가 최근 수집한 이미지 풋티지(footage)들을 무한으로 쌓은 영상을 재생시키는 작업이다. 이 영상도 익명의 누군가가 반투명의 컵에 믹스커피를 넣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전체가 조망되는 〈리캐스팅〉의 공간에서 작가는 직접 자수를 놓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열어 작업 과정을 공개한다. 금번 전시를 포함하여 안솔지의 작업에서는 꾸준히 ‘투명함’이라는 특성이 발견된다. 우선 작업의 조형적 특징에서 그렇고, 한편으로는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증상을 관찰하고 꺼내 놓는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3] 투명함은 장벽이 있음에도 바깥에서 안을 환히 볼 수 있음을 뜻한다. 현대 과학기술에서 엑스레이, CT스캔 기술이 우리 몸을 투명하게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우리 몸의 안과 밖을 들여다보기 위해 투명하고 반짝거리는 재료를 사용해서 그 감각을 재현한다. 그리고 투명함을 경유해 우리를 분류하고 판단하려는 기술들과는 달리 작가는 우리의 몸이 갖는 다채롭고 다면적이며 생산적인 가능성을 내보인다. 작가는 그 가능성의 일면에 대해 생명을 양육하는 존재이자 미적 실천을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하는 자아로 증명한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 또 우리의 외상과 내상을 살피고, 그 상처가 몸과 마음에 남긴 유산들을 탐색하면서 새로운 세계와의 충돌을 마주한다.
윤수정
[1] 팬데믹 시기 제작된 〈소독방〉(2018–2020)은 개인의 통증이 의학에 의해 어떻게 보편적이고 차갑게 다뤄지는지 제시한다.
[2] 안솔지가 직접 쓰고 출간한 픽션(fiction) 『다형적 상처』(2021)에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갖고 하나의 도시로 이주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육체적, 정신적 증상들로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며 우정을 쌓는다.
[3] 작가가 2020–2021년 진행한 작업의 제목은 〈엿보기〉, 〈보이던 것들〉로 현미경에 비친 무언가를 그리거나 신체적 염증과 머리카락 등을 관찰하여 기록한 연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