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명륜동 작업실 결과보고전: 부피, , 리듬

2021 명륜동 작업실 3인전

윤수정 캔 파운데이션 큐레이터

캔 파운데이션은 2021년을 마무리하는 전시로 명륜동 작업실 입주 작가들의 결과보고전을 마련하였다. 2016년부터 작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해온 명륜동 작업실은 벌써 6년째를 맞이하는 레지던시 공간이다. 올해 명륜동 작업실에 입주한 세 명의 작가, 김세은(1990-), 안상훈(1975-), 최수정(1977-)은 공교롭게도 모두 회화 작가들이다. 같은 장르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세 명의 작가들이 조금 더 부드럽게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올해에는 워크숍, 외부 전문가 초대의 시간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 1년의 시간을 마무리하며 구체적으로 공유된 목표가 다름 아닌 이번 결과보고전이다. 작가들은 명륜동 작업실에 머무르면서 서로 다른 각자의 태도와 자세를 견지하며 작업을 이어왔다.

현실의 감각을 순수한 조형 요소로 옮기는 김세은 작가는 오로지 색채와 물성, 필치만으로 화면 위에 지속적인 긴장과 활기를 불어넣는다. 고조되는 에너지들이 평면 안에서 마치 움직이는 듯 보이는 작가의 추상은 작가가 공간과 풍경 안에서 감각된 덩어리와도 같은 이미지를 붓질로 체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도 작가가 경험한 온라인상의 공간, 일상의 풍경에서 만나는 터널 혹은 지하의 공간, 우리 신체 내부의 공간 등 자신을 둘러싼 내외부 공간의 이미지들을 감각한 결과물이다. 작가는 모호한 상태로 있는 이미지들을 작가의 살아있는 신체적 행위를 통해 평면 위에 붙잡아 놓는다.

안상훈 작가는 최근 스마트폰 사진첩의 삭제된 이미지 일부를 캔버스에 옮겨 확대 반복하는 행위를 통해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일상에서 버려진 찰나의 순간을 캔버스 위에 재소환 시켜 1차 레이어로 활용하고, 그 위에 선과 색, 작가의 제스처를 덧입히는 작업을 진행한다. 그렇게 나타난 추상의 이미지는 원본의 맥락과 멀어지지만, 또 다른 언어 혹은 서사와 연약하게 관계한다. 작가에게 이미지는 단순히 정지해있는 장면이 아니라 이질적인 개념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소멸하고 다시 또 생성하는 어떠한 주기를 가진 유기물과 같아 보인다. 그리고 작가는 계속해서 회화를 통해 그 가능성을 실험하고 확장한다.

캔버스에 물감으로 형상을 표현하고 그 위에 자수를 놓는 작업방식을 이어가는 최수정 작가는 이를 통해 회화의 주제와 형식적인 측면뿐 아니라 재료가 발화하는 현상까지 살핀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RGB 컬러에 기반하여 식물을 그린 회화 작품을 선보였다. 작가가 화면에 그린 구체적인 대상은 식물이지만, 빛을 그리는 작업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형광의 색채와 식물 형상에 직조된 자수가 반사되는 효과는 빛에 대한 작가의 관심사를 짐작하게 한다. 이 같은 표현 방식을 지속하며 작가는 관찰한 대상과 평면 사이의 거리를 점차 벌린다. 작가는 그리기 전후로 발현되는 감각과 심상, 그가 감지한 회화의 본질에 집중하며 그림을 그린다.

이처럼 세 명의 작가는 스스로의 안과 바깥을 끊임없이 오가며 화면을 구성한다. 작가들은 각자의 몸으로 세계의 모양을 감각하고, 이를 내면의 공간 안에서 변주시켜 물질을 동반한 시각적 기호로 조형화한다. 이렇게 구성된 화면은 구체적인 대상을 지시하지 않고, 언어화되지도 않아서 보는 이에게 어떤 것을 보도록 명료하게 지시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술가의 붓질은 화면 안에 부피를 만들고, 캔버스 위 색면은 그 너머의 빛을 함축하며, 작가의 몸짓은 조형적 질서와 리듬을 창조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들은 살아가는 삶에 대한 감각과 인식을 체현하고, 또 다른 차원의 비가시적인 세계에 다가선다. 작품을 보는 이들이 그 세계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다면, 치열한 일상의 시공간에서와 다른 무엇인가를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