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소개글 (작가노트)

이야기는 왕이 없는 어느 땅에 신들이 한 도시의 기초를 다지고 벽돌로 성벽과 건물을 짓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지막엔 그 땅에서 왕이 된 한 남자가 독수리를 타고 지구 밖까지 날아오른다. 바다가 작은 웅덩이만 하게 보일 만큼 높은 고도에서 그는 고소공포증을 느끼고 포기를 외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독수리는 뛰어내리는 그를 매번 붙잡아 몇 번이고 다시 비상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멈춘다. 내용이 쓰여있는 점토판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새로 건설된 도시의 왕이 된 자가 하늘에서 얻으려 했던 건 왕위 계승자를 잉태시킬 수태초 였다. 몇 명의 왕의 통치로 단절되고 말았던 이전의 왕조와 달리 이 신화의 주인공은 기록 상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왕조 중 가장 긴 23대까지 이어졌다. 길었든 길지 않았든 하나의 문명을 일으켰던 도시와 나라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한 곳에서 재가 되고 다시 벽돌이 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Whirl 회전>은 끊임없이 창조되고 멸망하기를 반복하는 도시의 순환을 다양한 방식으로 암시하는 전시이다. 생의 시작을 기다리는 작은 움직임들이 증폭되어 전시장의 공기를 흔들고 관객이 잊어버렸던 태동의 감각을 깨우려 한다. 탄생과 멸망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가 전시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형상으로 드러난다.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인간의 의지가 살아 숨 쉬는 신화 속 도시의 열린 결말, 발굴지에서 모래 언덕 위로 폐허가 되어 드러난 집터와 사원이 이야기하는 도시의 알려진 결말, 이 두 가지 결말 사이에서 현재도 끊임없이 높은 탑을 쌓으려는 인간의 확장형이자 대형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도시의 열린 가능성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고자 한다.

각 층에 진열된 작품들은 하나의 소리로 연결되어 전시장을 관통한다. 한 층에선 촉각으로, 다른 한 층에선 시각적 이미지로 변환된 작품들은 전시장을 흐르고 있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단서들처럼 그 의미가 발굴되기를 기다린다.

작가소개

전혜주는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Art and Media를 전공하고 마이스터슐러 자격을 취득했다. 2013-2014년에는 리서치 기반 예술 프로젝트인 올라퍼 엘리아손 스튜디오의 공간실험 연구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도시공간에 다양한 형태로 기록된 시간성에 관심을 두고 각 지역과 장소들을 리서치하며 수집한 시간의 흔적들을 설치나 오브제로 재구성, 또는 공공장소에 개입하는 프로젝트들을 진행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