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집예술이라는 벽지를 바르다 

낡은 기와지붕이 얹혀져 있는 단층의 허름하고 오래된 집이 있다. 사람들이 이사 가고 난 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량하고 허름한 집, 한옥도 아니고 현대식 건물도 아닌 오래된 집엔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 세대가 지나가고 또 다른 세대가 살면서 남긴 삶의 흔적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위해 헌 벽지 위에 새로운 벽지를 발랐다. 그렇게 벽지는 두꺼운 층을 이루며 공간의 역사를 기록해나갔다. 허름하고 오래된 공간, 비가 새고 곰팡이가 핀 공간은 점점 폐가로 변해갔다. 개발주의의 불도저가 공간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리기 전에 손을 써야 했다. 그것은 바로 공간이 가진 이전의 흔적들에 예술가들의 손길을 덧대는 것이었다. ‘오래된 집 재생프로젝트’의 명칭은 이렇게 생성되었다. 그것은 몇 겹의 오래된 벽지 위에 예술적 벽지를 새롭게 바르고자 하는 행위였다. 

공간은 그 공간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된다. 그것은 주거환경으로써의 건축이 아닌 예술실천의 차원에서의 재생산이었다. 여기서 ‘재생’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쓸모가 사라진 낡고 허름한 공간이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재생된다는 것과 둘째, 작가 개인의 창작활동에 새로운 변화가 생겨나 작업의 활력을 찾는 생산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사실 반듯하고 깨끗한 공간을 제공하는 수많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비하면 ‘오래된 집’ 레지던스는 시대를 역행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레지던스 공모엔 많은 작가들이 지원하였다. 2009년 8월 14일 레지던스 사전 설명회에서 직접 오래된 집 두 채를 보여주었고, 활용이 가능한 작가만 공모에 지원하라고 권고하였다. 그 만큼 낡고 허름한 집이었다. 공모결과 최종적으로 문영미, 변시재 두 작가가 선정되었다. 문영미는 실제 시골도시나 도시 변두리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집을 그리는 작가로 자신이 오래된 집 레지던스에서 활동해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변시재는 도시 건설의 붐 속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공사현장에 대한 생각들을 작품으로 옮기고, 오래된 집에서 이를 펼쳐 보이고 싶어 했다. 두 작가의 생각을 실험하는 장소로 오래된 집은 아주 적합했다. 그렇게 오래된 집은 일 년을 작가들과 함께 했다. 그러나 오래된 집 레지던스는 옛 모습에서 주는 운치를 편안하게 체험하기에 녹록한 곳이 아니었다. 지난해 유난히도 추운 날이 지속되었던 겨울, 난방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오래된 집이 꽁꽁 얼어붙어 작가들은 작업을 할 수 없었고, 올해 여름에는 천장 틈새로 흘러내리는 빗물들을 받아 둘 양동이를 준비해야 했다. 작가들은 낡고 오래된 집이 주는 불편함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면서 자신들의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였다. 사실 그렇기에 이 프로젝트가 의미가 있다. 새로운 것, 깨끗한 것을 추구하는 개발주의적 관점과 도시디자인에 집중한 공공미술의 관점에서 ‘오래된 집 재생프로젝트’는 낡고 오래된 삶의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새로운 대안이 되었다. 삐걱거리는 문을 고치고, 오래된 집을 창작공간으로 바꾸어 그 안에서 작품 활동을 펼친 두 젊은 작가의 열정은 단지 공간을 재생한다는 의미를 넘어 작가 개인의 내적 장과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가능케 하였다.

‘오래된 집 재생프로젝트’는 낡은 미디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었다. 그것은 낡고 오래된 공간이 단지 버려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삶의 흔적들이 녹아 있는 역사의 한 부분임을 기억해야 함을 제안하는 것이자, 공간이 단지 하나의 오브제가 아니라 개인의 삶과 연결된 생산의 환경임을 인식시키는 제안이었다. 예술이 삶의 터전이었던 오래된 집 공간에서 새롭게 피어날 때, 공간의 역사성은 과거와 현재의 모습들을 모두 드러낸다. 그리하여 지나간 벽지의 흔적 에 오버랩 되는 새로운 삶의 흔적들이 아로새겨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집이 주는 운치이자 생명력인 것이다. 이제 삶의 역사가 묻어있는 낡고 오래된 집에 예술적 향기를 불어 넣은 문영미, 변시재 두 작가의 의미 있는 예술적 벽지를 감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