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이웃이 사라졌다. 

집 앞 거리를 열심히 청소하시던 하얀 런닝을 입은 아저씨도, 문 앞 작은 공간에 빨래를 널던 얼굴 모를 일층 아줌마도 사라졌다. 그 곳엔 좁은 골목길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상상하기 어려운 커다란 굴착기가 있었다. 설마 하는 나의 의심을 비웃는 듯 그렇게 모든 벽과 공간은 하루 아침 사라져버렸다. 바지런히 움직이는 아저씨들의 손을 따라 정화조가 만들어지고 파이프가 놓아지고 시멘트 벽들을 채우기 위한 거푸집이 세워지더니 4층짜리 원룸 빌딩이 들어섰다. 

원룸 빌딩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한참 그 건물은 텅텅 비어 있었다. 갈 데 없는 동네 청소년들은 주차장에 낡은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사사오오 모여 담배를 피웠다. 나는 이젠 사람이 살지 않는 이웃네 집을 매일 지나치며 집 앞을 치우시던 하얀 런닝을 입은 아저씨는 어디로 이사를 가셨을까 궁금해했다.

초등학교 과정이었을까 중학교 과정이었을까. 사회 교과서에는 도시경관 변화라는 내용을 설명하며 남산 주변의 사진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오랜 기간을 사이에 두고 찍은 사진들에서 야산들은 사라지고 건물들이 지어졌다. 또 그렇게 도시는 팽창하고 점점 고층화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발전을 읽는 방식이다. 낡고 헌 것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새롭고 첨단의 것이 그것을 대체하는 방식이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개발’이다. ‘뉴타운’과 같이 정부나 지자체에서 계획하고 수행하는 대규모의 것에서부터 원룸빌딩을 짓기 위해 어느 날 이웃이 사라지는 소소한 개발까지 ‘전면 재건축식 개발’은 우리네 삶 속에 가까이 있다. 이번 전시에 주로 사용된 재료인 먹지는 위에 눌러 쓰이는 것을 그대로 투영하여 복사본을 만드는 매개체이다. 먹지에 드로잉을 하는 것은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존재하던 것을 파괴하고 사라지게 하는 개발과는 다르지만 또한 동시에 아무것도 없어 ‘완벽’했던 먹지에 드로잉을 위해 선들이 눌러 그어지는 순간 이전의 평정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면에서 아이러니컬하게 닮아있다. 먹지에 그려진 집들은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의 기록이 될 수도 있고 또한 누군가의 추억 속에 살아있는 것을 회상시키는 사적인 경험의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다. 건축물을 계획하며 그려지는 블루 드로잉과 달리 이번 전시의 블루 드로잉은 또 다른 가상의 시간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벤야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 벤야민은 그의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의 역사나 사랑하는 이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유아로 소생/퇴화된다. 예전 일상의 흔적을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건축방식으로 새롭게 소생되는 서울이 벤야민을 회상시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듯 싶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들을 대체해 지금 우리의 환경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방적 파괴와 너무나도 닮아있는 소통의 ‘차단’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박혜정 작가노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