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경
2017 베를린 ZK/U

본인은 작품 제작을 시작하기에 앞서 장소와의 친밀도를 높이기 위한 ‘거리 좁히기’ 라는 이름의 과정을 밟는다. 이는 특정한 지역에 방문하여 물리적 시간을 들여 거주하면서 공간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인데, 이러한 과정 안에서 공간 속에 이유 있게 배치되어 있는 물질들을 수집하면서 다양한 방향성을 지닌 관계들, 그리고 그에 따른 이야기들을 알아가게 된다. 이후, 이 모든 것들을 증거물로 삼아 시각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궁극적으로 공공공간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지극히 개인적 시선과 판단에 따른 결과물이다. 본 인은 이를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작성된 다큐멘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다. 즉, 선택한 지역에 관하여 조사를 한 후 그 지역의 물질들을 소재 삼아 작품을 제작하는 작업방식이다. 이는 지역 주민들과는 다른 언어로 지역에 대해 말을 하게 된다. 또한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네들의 일상성은 자연스럽게 섞이게 되는데, 이는 지역에 거주하며 지역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작가 개인적 시선의 특징을 더하게 되는 것이다. 지역별로 흙을 수집하여 흙에 관한 조사로 해당 지역의 특성을 읽어내기, 버려진 공간을 물청소를 하여 그 물을 모은 후 하나의 투명한 공간에 담아 먼지의 층위를 이용하여 과거 보여주기, 지역주민이 모아준 물질들을 이용한 제3자의 입장으로 공간 말하기, 일정한 거리를 반복하여 걸으며 길에서 수집한 버려진 물질들로 이용하여 지역에 관한 시각적 지도 제작하기, 어르신들께서 사용하다가 이내 돌아가셔서 뜻하지 않게 주인을 잃어버린 물질들을 모아 대신 장사 치르기 등. 이렇게 공간 안에서 발생하는 물질들을 이용하여 공간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달해주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본인은 작가가 ‘speaker말하는 자’뿐만이 아니라 ‘listener 듣는 자’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공간에 관한 조사를 하는 과정 중에 수집하게 된 물질들의 목소리를 들은 후, 우리 주변 도처에 위치하고 있으나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고 지나쳤던 공간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전달하는 작업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고민이 발생하였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보다 면밀한 공감대 형성을 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현재로서는 연극적인 접근 및 해석을 더하는 것이 어떠할까, 생각하는 바이다.

(2017 작가노트 중)

[6월의 작가 인터뷰는 2017년 상반기(2월~4월) 베를린 ZK/U 레지던시 입주작가인 한석경의 입주후기로 대체합니다. 본 글은 작가의 후기를 바탕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베를린에 도착한 그 주, 2월 23일에  열리는 February OPENHAUS 덕분에 정신없이 바로 작업에 임해야 했다.

듣던 대로 오픈하우스를 보기 위한 방문객이 상당히 많았다. 저녁 7시에 자유형식으로 행사가 먼저 오픈이 된 후, 저녁 8시부터는 ZK/U 코디네이터가 직접 진행하는 관객과의 투어가 시작되었다. 40-50명 되는 관객들이 함께 움직이면서 작업들을 관람하고,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에 관하여 자유롭게 발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본인은 몹시 긴장하였으나, 아무래도 베를린에서의 작업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서인지 모두들 흥미를 갖고 들어주었고, 이후에 여러 질문도 받았다. (후에 알게 되었으나, 당일의 날씨가 상당히 춥기도 하였고 베를린 곳곳에서 크고 작은 행사들의 오프닝이 많이 겹쳐있어서 사람의 수가 평소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고 한다.)

오픈하우스를 참여하게 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본 행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ZK/U 관계자들과 작가들끼리 따로 진행하는 프리투어였다. 이것은 본 행사 안에서 진행되는 투어의 동선을 정리하면서 시스템적인 부분들에 관한 최종 점검이기고 했고, 서로의 작업에 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사전에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은 한국에서 수차례 전시를 참여하면서도 겪어보지 못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2월의 오픈하우스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였다. 어렸을 적 독일에서 4년간 생활했던 당시에는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이라 그 때 서독에 살면서 동독을 오갔던 경험이 있던 본인은 다시 돌아온 독일의 변화된 모습들이 상당히 생경하고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아직까지도 통일의 여파 때문에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분단 전의 건축물 및 여러 기록들에 관심을 갖고 조사하며 작업을 진행하고자 하였다.

그러한 과정 중에 알게 된 사실 한 가지가 있었다. 분단 당시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오고자 도망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가족은 열기구를 타고 철조망을 넘고자 시도했고 이것이 성공하여 서독에서 살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신문 및 라디오의 매체를 통해 서독의 생활과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착안하여 ‘신문’이라는 물성을 이용하여 작업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신문은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종 정보가 담겨서 나라의 곳곳에 흩어져서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읽혀지는 성질을 갖는 물질이다. 말 그대로 독일어가 적혀서 독일의 특성을 그대로 담긴 온전한 독일의 것이다.

사람들에게 읽혀진 후 더이상 쓸모가 없어진 신문들을 지역 곳곳에서 수집한 후, 낱낱이 잘라서 이를 이용하여 종이실을 만든다. 이후, 생활 속에서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서 필수 불가결하게 발생하는 물질들과 함께 손수 제작한 베틀을 이용하여 함께 엮어냈다. 이를 ‘기억의 커텐’ 이라는 이름으로, 작고 약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는 지난 시간의 기억들을 보여주는 의미로 제작하고자 하였다.

4월 27일에 열린 오픈하우스는 내 스튜디오에서 진행하였고, 2달 가까이 밤낮으로 작업했던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었다. 총 3점의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베를린에서 생활하면서 수집한 물질들을 이용한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함께 참여하였던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 엄청난 칭찬과 피드백을 받았고,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다원예술그룹에서 함께 작업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 또한 받게 되었다. 밤낮으로 잠을 줄여가면서 작업에 매진했던 순간들에 대한 큰 보상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오픈하우스를 마친 후, 5월에는 그 동안의 작업들을 정리하면서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고 있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서 다녀오기도 했다.

짧은 3개월의 시간동안 예술의 도시 베를린에서의 생활은 앞으로의 작업 활동에 관해서 다각적으로 바라보면서 스스로를 재점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전 세계에서 모인 작가들과의 만남 및 관객들과의 자연스러운 접촉으로 인해 작업의 직접적인 이유에 관해서도 고민해볼 수 있었다. 덕분에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관해 새로운 방향성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큐레이터 박유진

석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동양화, 서울, 한국
2008 학사, 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 서울, 한국

Solo Exhibition (Selected)
2024 《섟》, 예술창작공간 새들, 고양, 한국
2020 《사사》, 아트포럼리, 부천, 한국
2020 《지긋지긋한 생업의 즐거움》, 우리미술관, 인천, 한국
2019 《시언: 시대의 언어》, DMZ 예술구락부 통, 파주, 한국/화곡동 컨테이너, 서울, 한국
2013 《유사한 사유》, 오픈스페이스 배, 부산, 한국
2013 ‘잇다’ 프로젝트 선정 《움직이는 마음》, 박수근미술관 정림리갤러리, 양구, 한국
2011 《시간채집: 잃고 잊고 있고》, 보안여관, 서울, 한국

Group Exhibition (Selected)
2025-2026 《비(飛)물질: 표현과 생각 사이의 틈》, 경기도미술관, 안산, 한국
2025 고양미술축제 《겹, 틈, 결》, 고양시립 아람미술관, 고양, 한국
2024 《Journey to Today 오늘을 향한 여정》, 명파아트호텔 1층, 고성, 한국
2024 《Drawing Box 두 번째 상자》, 아트레온갤러리, 서울, 한국
2024 《산 자와 죽은 자 가운데》,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서울, 한국
2024 《Here, Ready, Art!》, 해움윈도우갤러리, 고양, 한국
2023 《바람에 맞서서》, 초도항 항구 옥상 및 테라스, 고성, 한국
2023 《아슬아슬아슬: 경계에 발딛기》, 부천아트벙커B39, 부천, 한국
2022 《옆으로 나누는 대화》, 임시공간, 인천, 한국
2022 《해움·새들 제1기 입주작가 프리뷰전》, 고양시예술창작공간 새들, 고양, 한국

Residency
2024 <해움·새들 2기 입주작가>, 예술창작공간 해움·새들, 고양, 한국
2023 <해움·새들 1기 입주작가>, 예술창작공간 해움·새들, 고양, 한국
2017 <베를린 ZK/U>, ZK/U, 베를린, 독일
2017 <평화문화진지 1기 입주작가>, 평화문화진지, 서울, 한국
2015 <거리예술 전문가 양성과정_공연예술 구조물 기획/제작>, Cite des arts de la rue, 마르세유, 프랑스
2014 <New Zero Space>, New Zero Art Space, 양곤, 미얀마
2013 <길-문화유랑 디딤길>, 아트창고, 제주, 한국
2011 <국제 레지던시 OPEN TO YOU>, 오픈스페이스 배, 부산, 한국

Award
2023 <경기예술지원 창작분야 선정>, 경기문화재단, 수원, 한국
2023 <강원문화재단 예술첫걸음지원 선정>, 강원문화재단, 춘천, 한국
2020 <아트경기 작가 선정>, 경기문화재단, 수원, 한국
2019 <경기예술창작지원 개인전 지원 선정-시각예술분야>, 경기문화재단, 수원, 한국
2018 <전문예술창작지원 신진작가 지원 선정-시각예술분야>, 경기문화재단, 수원, 한국
2017 <청년예술인 창작지원사업 최초예술지원 선정>, 서울문화재단, 서울, 한국
2016 <고양문화재단 제5회 신진작가 선정>, 고양문화재단, 고양, 한국
2008 <제9회 대한민국 여성미술대전 입선>, 대전서구문화원, 대전, 한국
2008 <제29회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입선>, 한국현대문화미술협회, 서울, 한국
2007 <제3회 경향미술대전 입선>, 경향신문, 서울, 한국

(2025.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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