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섭
2008 PSB 창작스튜디오1기 

미국의 미술평론가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그의 저서에서 ‘예술작품은 어느 개인의 순수의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행했던 문명의 축적된 힘이 예술가의 창작을 강요한다’라고 말하며, 현대미술의 다양한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으로 예술의 네러티브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즉, 이전의 예술품들이 보여지는 대로 이해하는 ‘보는 작품’이었다면, 현대미술에서는 작가의 이념과 창작동기, 작품의 미학적 또는 철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읽는 작품’으로 예술품의 네러티브적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와 그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이 공통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공유하는 경우 그 소통이 더욱 용이 해 질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전통 문화의 요소는 예술의 암시적인 기호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며, 예술을 공감하는 가장 안정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박희섭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동양 회화를 기본으로 발전해 온 현대 추상회화로써, 작업 초기부터 한지와 자개 등 전통적 요소를 차용한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이러한 작업의 배경과 표현방법은 오랜 시간 동안 공통된 문화적 경험을 통한 작가와 대중들 간에 보이지 않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요소가 되었고, 그의 작업들이 심미적으로 안정되고 이해하기 쉬운 작품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번 전시 <After Nature> 또한 작가의 오랜 작업의 연장선 상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자연의 치유적인 풍경이 소개될 것이며, 오랜 시간의 공통된 경험을 통한 자연스러운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박희섭의 작업은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매우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변화하여 왔다. 초기 작업에서는 물과 하늘이라는 추상적 주제를 수 천 개의 자개 조각을 일정하게 배치하거나 흩뿌리듯 표현하여 자연의 영원성을 회화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대자연의 주제는 이후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인체기관들로 표현이 되어 졌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은 인간의 생성과 소멸을 우주의 순환이치로 이해하는 오행이론이 작업의 모티브로 차용되었다. 작가가 베이징으로 작업실을 옮긴 이후 그의 작업에는 자연이 좀더 섬세하게 표현이 되는데, 이러한 변화들은 마치 시간을 두고 자라나는 나무와 같은 생명력을 가진 듯 느껴진다. 2008년 그가 작업실을 베이징으로 옳긴 시점을 중심으로 그의 작업에 큰 변화가 보여지는데, 이전의 작업들이 보다 구체적 방법으로 작업의 주제와 모티브가 반영이 되었다면, 이후의 작업들은 더욱 은유적이고 간접적으로 표현되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박희섭의 작품은 ‘자연’ 혹은 ‘풍경’이라는 익숙한 주제와 한지와 자개라는 친숙한 재료를 사용한 매우 편안한 작업들로 이야기되어 왔으며, 이것이 그의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작업 이면에 다루어 지지 않는 ‘낯설음’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해 보고자 한다. 박희섭의 작품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다루고 있는 소재가 주변 환경이나 문화 경험을 통해 일상적으로 접해 온 풍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살펴보면, 작품 속에 표현된 나무나 바위의 형상은 실제의 모습이 아니라 나무처럼, 혹은 바위처럼 보이는 관념의 타래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작가의 경험과 인식의 축적된 힘이 반복적인 패턴과 다양한 형태로 캔버스에 표현되는 과정으로, 쉽게 말하면 현실에 존재하는 자연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무의식 속에서 자라는 존재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박희섭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낯설음’은 작품 속에서 차단된 ‘제한된 시각’이라는 점이다. 작품 속의 형상들은 마치 캔버스 바깥으로 확장될 것 같이 화면에 가득 차 있으나 화면 밖의 풍경을 상상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것은 비록 비현실적인 형태라 할 지라도 가시적 공간 안에서 익숙한 경험을 찾아 내는 것과는 달리, 비가시적인 환경에서 구체적 형태를 상상하기에는 시각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단색채의 화면은 이러한 ‘제한된 시각’을 더욱 구체화시킨다. 형상을 이루는 자개는 빛을 발현하고 있으나 배경이 되는 캔버스는 색채를 흡수하고 있다. 수 천개의 자개 조각으로 이루어진 세밀한 형상과 대비되는 매우 간결한 공간은 신화적인 상징성을 담고 있어, 작품 구성의 한 부분이 아니라 독립된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이러한 공간에서 시각과 감정의 변화를 느끼며 약간의 긴장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희섭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일련의 ‘낯설음’은 그의 작품이 생경하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흥미롭고 친숙하며 더 나아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끼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치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에서 유행했던 ‘낯설게 하기(Defamilarization)’와 같이, 익숙한 작품 속에서 낯선 요소를 찾아 냄으로써 작품의 근원을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일반적인 것에 낯설게 보기를 강요함으로서, 익숙한 것의 관념적 가치를 강조하는 이 장치는, 일상화된 인식의 틀을 깨고 낯설게 함으로서 환경과 사물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주는데 목적이 있는데, 현대미술에서도 종종 이러한 장치를 사용하여 예술작품의 오리지널리티의 관념인 희소성을 부정하고 보편성이나 대중성으로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박희섭의 작업이 매우 익숙하고 편안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일 것이며, 예술적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들에게 친숙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유일 것이다.

박희섭의 작업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거쳐 환경과 자연이 진화하듯 보이지 않는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작업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박희섭의 작업에서 그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그의 작업이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에서, 구상과 추상의 사이에서, 그리고 익숙함과 낯설음의 중심에서도 예술적 본질을 잃지 않고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술은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 하였다. 이런 점에서 박희섭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무한한 대상에 대한 관념들을 영원한 대자연의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함축해 말할 수 있으며, 그러한 작업을 통해 오래된 경험을 공유하고 상호 치유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2008 민은주 캔 파운데이션 작가글)

2002 석사, 동국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울, 한국
1999 학사, 동국대학교 미술학과, 서울, 한국

Solo Exhibition (Selected)
2019 스페이스 문, 인천, 한국
2016 《박희섭 개인전》, 가나아트 언타이틀, 서울, 한국
2015 L갤러리, 베이징, 중국
2015 홍콩 컨벤션&전시센터, 홍콩, 중국
2013 《박희섭&쩡짜이동展》, 아트미아, 베이징, 중국
2012 《After Nature》, 스페이스 캔, 베이징, 중국
2011 《After Nature》, 동산방갤러리, 서울, 한국
2009 《After Nature》, 갤러리 아트사이드, 베이징, 중국
2007 《Mother Nature of Pearl》, 국립고양창작스튜디오, 고양, 한국
2007 《Mother Nature of Pearl》, 갤러리 빌, 서울, 한국

Group Exhibition (Selected)
2021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무안, 한국
2021 《We Connect Art&Future》, 인천국제공항, 인천, 한국
2020 《풍경을 그려내는 방법》,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한국
2020 《한: 숨》, 라흰갤러리, 서울, 한국
2019 《금호영아티스트: 16번의 태양과 69개의 눈》, 금호미술관, 서울, 한국
2018 《북경춘신》, 갤러리BK, 서울, 한국
2017 《오마주: 오래보고. 마주하고. 주목할만한》, 가나아트파크 가나어린이미술관, 양주, 한국
2017 《코리안즈 스피릿》, 아트베라스갤러리, 제네바, 스위스
2016 《독일무이》, 홍원창의 생활공간, 베이징, 중국
2015 《TOUCHING MOMENTS IN MACAU》, 가나인사아트센트, 서울, 한국

Residency
2008 <Project Space in Beijing>, 스페이스 캔, 베이징, 중국
2006-2007 <국립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3기>, 국립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고양, 한국 

Collected
경기융합타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금호미술관, 동부레인보우 CC, 코트야드메리어트호텔 판교,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법무법인태평양, 법무법인태평양 북경사무소, H장식설계유한공사, 치하오흥업유한공사, 후이마이온라인네트워크테크놀러지, 샨시진위안집단유한공사, 부천 세종병원, 인천미술은행, 센다이주재한국총영사관, 정부미술은행 과천, 충칭 협신센터,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파키스탄주재한국대사관, 포스코글로벌R&D센터, 포스코베이징센터, 하나은행, HSBC은행, LG패션, OCI미술관

(2025.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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