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영
2012 오래된집
[성북동 동물원]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오래된 집이 있다. 6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집에, 아마도 2남 1녀의 자녀를 둔 단란한 가족이 복작거리며 오랜 시절을 살았을 것이다. 좁은 방 안에서 남자아이 두 명은 축구를 하다 엄마한테 혼났을 것이고, 갓 사춘기를 들어선 여자아이는 내 방이 있는 아파트란 곳으로 이사를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엄마는 가을 비가 지붕에서 집의 작은 마당으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가는 세월’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아빠는 끊었던 담배를 몰래 태우다 지붕위로 후다닥 지나가는 고양이 발소리에 깜짝 놀라 담배를 놓쳤을 것이다. 온 가족이 잠자리에 누워 옆집 연애쟁이 언니가 귀가하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가족의 삶의 소소한 역사를 수 십 년간 담아준 이 집을 가족은 대체 왜 떠나게 되었을까? 이 집에 남겨둔 수많은 삶의 흔적들을 놔두고 그들은 그저 행복하게 새 집으로 떠났을까? 집에 남겨 둔 자신의 존재의 증거들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이 오래된 집에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다. 이 가족은 절대 자신들이 살던 집이 얼마에 팔릴 것인가를 셈하며, 얼른 누군가가 내가 살던 오래된 집을 허물어 크고 높은 집을 지어주길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벽에 남겨두었던 못 자국, 울퉁불퉁하고 수직수평이 맞지 않던 벽, 계절이 몇 번쯤 지났을 때 새로 붙였던 벽지, 보일러를 달았던 부엌 옆의 벽 등 집에 남겨 놓았던 소소한 삶의 한 때를 그리워하며 지나간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제 성북동 62-11번지 집 공간 안에 담겨있는 한 가족의 삶의 흔적들, 기억들을 발굴해 창조적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집이 가지고 있는 흔적의 형상을 보면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어떤 생명체가 그려진다. 마치 어린 시절 학습지에 있던 ‘숫자 따라 그리기’를 하듯, 벽에 남겨둔 못 자국, 울퉁불퉁한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물고기 형상이 보인다. 벽면을 따라 이어 그리기를 계속 하면 열대어가 유영하는 남쪽 어느 나라의 바다의 모습을 발굴하게 된다. 울퉁불퉁한 벽지를 따라가다 보면 고래등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코끼리가 보이며, 왜 생겼는지 모를 어떤 얼룩을 따라 이어 그리기를 하다 보면 용과 공룡이 싸우는 들판을 볼 수도 있다. 어떤 흔적은 사람의 얼굴을 한 하늘을 나는 물소의 형상을 닮아있다. 흔적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발굴을 진행하니 가족이 떠난 집에 다양한 성격을 가진 온갖 동물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북동 62-11번지, 2남 1녀의 자녀가 있던 가족이 살던 오래된 집은 현재 동물들이 살고 있는 성북동 동물원이다.
(2012 작가노트 중)
석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과, 서울, 한국
학사, 애틀랜타 예술대학, 애틀랜타, 미국
Solo Exhibition (Selected)
2010 《Aeng 요즘 뭐하니?》, SADI 윈도우 갤러리, 서울, 한국
2008 《민경영展》, 갤러리라이프, 서울, 한국
2008 《오지랖 민양의 인맥 쌓기》, Café Miel, 서울, 한국
2007 《Totally Socialite Miss Min》, Design Festa Gallery, 도쿄, 일본
2005 《Artistic Kate Spade》, Kate Spade 청담동 플래그쉽 스토어, 서울, 한국
Group Exhibition (Selected)
2024 《사소하고 소중한 것들》, 아트노이드178, 서울, 한국
2023 《OUR: story after little ice age》, 아트노이드178, 서울, 한국
2015 《버스에서의 만찬》, 스페이스 캔, 서울, 한국
2012 《Mikkai》, 도큐백화점, 가와사키시, 일본
2012 《Art Salad》, Masuii R.D.R Gallery, 사이타마, 일본
2011 《간지 間紙》, 이화아트센터, 서울, 한국
2011 《8 Plates》, 55도 와인앤다인, 서울, 한국
2011 《505》, 이화아트센터, 서울, 한국
2011 《Art Salad》, Masuii R.D.R Gallery, 사이타마, 일본
2010 《동대문 낭만시장》, DDP갤러리, 서울, 한국
Residency
2012 <오래된 집>, 캔 파운데이션, 서울, 한국
(2025.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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