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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 | [작가 유영주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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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8-01-31 18:34 조회1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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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K/U 2015 입주작가 <유영주> 인터뷰

 

2018'1월 캔에서는 유영주 작가를 인터뷰하였다. 유영주는 2015년 베를린 ZK/U 레지던시 입주작가이며 캔의 아트버스 캔버스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한 바 있다. 대화를 통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가장 아름다운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유영주 작가의 작업에 대해서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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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표적인 프로젝트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내 말이 들리나요? Can You Hear Me?>(2013~) 프로젝트는 여성들에게 당신은 어떤 여자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5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카페의 풍경이 이전과는 달라졌었다. 손님의 대다수가 30-40대 여성인 것에 놀랐고 더 놀란 것은 그들의 대화 주제가 자신이 아닌 남편, 시어머니, 아이 얘기가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여자들을 보고 여자들이 자기 얘기를 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바로 당신은 어떤 여자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녹음하기도 하고 노트에 남기기도 하고 해서 대략 200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녹음하였다.

 

Q. 수많은 여성을 인터뷰하였는데 이들이 여성으로써 지니는 공통점은 무엇인가?

 

내용보다는 태도에서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여성들은 특정한 순간에 예뻐 보인다. 연애하면 빛이 난다고 하듯이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순간 예뻐 보인다. 눈을 내리깐다거나, 먼 데를 응시한다거나 순간적으로 보이는 자기몰입과 자기정화, 그 순간들이 모두 예뻐 보인다. 또 다른 공통점은 자기 얘기 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질문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딱 던지면 모두 당황하면서 ...’ 이라거나 ?’라거나 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 첫 반응을 모은 작업도 있다.

 

Q 인터뷰를 수백 명을 진행했다는 것을 들으니 궁금해진다. 왜 대화의 행위에 왜 주목하는가? 대화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현대미술이란 오브제를 최소화하고 대화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과거의 예술가들은 많은 오브제들을 만들어냈지만 현대에는 굳이 오브제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대화를 할 일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일이 없으면 주로 집에 있어서 사람을 만날 일도 없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 그 사람에게 집중하게 되고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는 그 과정이 정말 즐겁다.

 

Q 방금 얘기했듯이 물리적인 오브제를 새롭게 생산하지 않으려는 것이 주목된다. 물리적인 오브제의 한계는 무엇인가? 왜 작품 생산을 지양하는가?

 

한때 머리보다 손을 믿었던 때가 있었다. 생산을 참 많이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너무 많아지니까 내 삶을 억눌렀다. 공부를 하던 시절이어서 작업실을 따로 구할 수가 없어 방 한쪽에 작업들을 쌓아놨었다. 그렇게 방 안이 꽉 찼고 그 순간 그게 삶이 아닌 것 같아서 그때 생각을 많이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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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주_You will never see me again_드로잉 1,000, 안전팬스 6, 폐타이어 42_2012

 

그래서 영국에서 <You Will Never See Me Again>(2012)라는 전시를 통해 방에 있던 2000점의 드로잉을 전시하고 그 이후에 모두 태워버렸다. 사람들이 작품을 태우는 것이 괜찮은지 많이 묻고는 했는데 9일 동안 설치하면서 개인적인 애착들을 정리해나갔다. 막상 태울 때 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쿨했던 것 같기도 하다.(웃음)

이전에는 삶과 예술이 동일하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삶이 예술보다 상위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냉정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유학 시절 돈이 없을 때 결국 삶이 상위라고 결론을 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작업의 수와 부피는 이사비용, 짐 부치는 비용과 연결되어있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그러한 조건들을 모두 조합했을 때 결국 삶이 위다. 재밌는 것은 오히려 삶을 선택하고 나니까 전시도 하고 다음 레지던시도 가게 되고 예술이 따라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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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주_You will never see me again_전시종료후 전시되었던 작품 전체를 불태움_2012

 

Q 작품을 모두 불타운 후 2013년에 세네갈에서 공원을 청소하는 프로젝트 <Beautiful is some moments>를 시작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왜 청소를 시작했는가?

 

원래는 세네갈에서 천 개의 학을 만들 듯이 천 개의 드로잉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세네갈이 아름답고 흥미로운 곳이라 도착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우선 세네갈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건강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녔다. 기부광고에 나오는 아프리카인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리고 세네갈에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수많은 쓰레기였다. 특히 해안가는 쓰레기로 꽉 차고 쓰레기가 오랫동안 쌓여서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기까지 하였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세네갈과 쓰레기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고 <Beautiful is some moments>를 통해 버려진 공원을 매일 매일 청소하였다. 쓰레기가 정말 끝도 없이 많았다. 매일 매일 쓰레기를 줍다 보니 주변으로 사람들과 안면이 트이고 가끔은 사람들과 줍기도 하였다. 마른 쓰레기는 따로 모아서 전시를 하고 전시를 끝내면서 모두 버렸다.

세네갈 시에서 청소부들과 함께 청소 자원봉사를 다니는 과정에서 왜 세네갈의 해안가에 쓰레기가 쌓여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복지제반시설은 한정적인 편인데 수익을 내기 위해서 그나마 있는 자원들도 모두 관광지에 쓰는 실정이다. 한정된 인프라가 관광지로 치중되니까 세네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해안가로 나가서 쓰레기를 버리게 되는 것이다. 언제 쓰레기 차가 올지모르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쓰레기가 세네갈 사람들이 만든 것만은 아니다. 관광객, 특히 서양인들로 인한 쓰레기도 많았다. 사실관광객들이 버리고 가는 플라스틱이 쌓이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오히려 세네갈 문화는 친환경적으로 플라스틱 사용이 거의 없다.

 

Q ZK/U 베를린에 가서도 화장실 변소를 청소하는 프로젝트 <Cafe Achteck>(2015)를 하였다. 세네갈에서부터 청소의 행위가 연결되는 것인가?

 

ZK/U에서의 프로젝트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Cafe Achteck>는 남성 전용 변소로, 이것에 대해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ZK/U는 공공공원 안에 있는 레지던시로, 주말 되면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찾아온다. 그런데 ZK/U 내부의 화장실은 늘 개방되는 것이 아니어서 아이 있는 엄마들이 내게 화장실을 자주 물어보고는 하였다. 나는 ZK/U 직원의 말에 따라서 외부에 있는 단 하나의 화장실을 매번 알려주었는데 한참 뒤에 그 화장실을 들여다보니 남성화장실 전용이었던 것이다.

그걸 안 순간 화가 많이 났다. 나에게 화장실을 물어보았던 수많은 여성들이 스쳐지나가면서 화가 났다. 남성 전용 변소라 변기가 없고 서서 눌 수 있는 8각형의 구조로 되어있었다. ZK/U가 도시계획학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을 개방하지 않는 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분노를 느낀 이후로 리서치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변소가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일종의 역사적인 기념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여성이 소변을 보는 것이 가능할까 싶어 직접 소변을 보았는데 정말 치욕스러웠다. 친구를 데리고 가서 등을 돌리고 엉덩이를 보여준 채로 소변을 보려니 다른 면에 코를 박아야했고 냄새가 엄청났다. 나는 이 이슈를 보여주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청소를 했다. 청소를 2회를 걸쳐 하면서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는 여자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가?(Where is the women’s toilet?)”로 이곳에서 여자가 소변을 볼 수 없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두 번째는 이렇게 하면 낫지 않겠어?(Wouldn’t it be nice?)”로 구조를 반으로 나눠 남녀가 쓸 수 있는 화장실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공공시설을 짓는 회사에 나의 프로젝트와 리노베이션을 요구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쪽에서 곧바로 재계약이 완료되면 검토해보겠다고 답장이 왔다. 재계약이 2017년으로 종결되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곧 다시 이메일을 보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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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주_I asked(Lagos, Nigeria)_2017

 

Q 청소에 이렇게 다양한 사회적 함의가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최근에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제1회 라고스 비엔날레에 초청 받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곳에서도 청소를 했는가? 그곳에서는 어떠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가?

 

2017 라고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경계의 삶 Living on the Edge>였다. 이 주제를 처음에 들었을 때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라고스에 사는 사람들에게 누가 위기/경계에 산다는 것인지 묻는 프로젝트를 계획하였다. 그런데 중간에 중단하였다. 왜냐하면 "경계의 삶 Living on the edge"은 관용구로 가장 처참한 삶을 뜻하는데, 사람들에게 누가 경계에서 사는지 물으니까 사람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교통체증부터 가난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까지 인상을 쓰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많이 해본 입장에서 누군가를 화나게까지 하면서 대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중단하였다.

그러다가 방향성을 바꾸어서 질문을 다르게 던졌다. 너는 누가 위기/경계에 산다고 생각하니?”라고 묻자 사람들이 기존에 질문의 관용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지리학적으로 해석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 속의 대상과 대상이 있는 장소를 찾아 똑같은 질문을 묻고 그 답에 따라 그 다음 장소 혹은 사람으로 이동하는 식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일종의 릴레이 형식인 것이다. 또는 책임감을 떠넘기는 것이기도 하다.

카페의 여종업원에게 이 질문을 처음 했을 때, 방향성에 따라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종업원은 경계(Edge)를 지형학적으로 해석하여 라고스의 해안가 마을을 지목하였다. 그곳은 역설적이게도 부자들이 사는 동네였다. 이거다! 싶어서 종업원이 지목하는 마을에 가서 부촌에 살고 있는 청년을 만나 물었다

카페에서 만난 이 청년은 애플 맥컴퓨터를 사용했고 고등교육을 받았다. 이 청년에게 누가 당신이 위기/경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래동의해?”라고 물으니 놀랍게도 맞아.”라고 대답해왔다그 전까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경계 끝에 사는 것을 부정하였다누군가가 당신을 지목했다고 하면 자신은 극구 부인해왔다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다면서그러나 그 청년은 자신이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인정하였다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인프라가 없어서 취직이 어렵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싶어도 부모님이 물려준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미래가 사회로부터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어려움으로 living on the edge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전 세계의 청년들이 느끼는 비슷한 암담함이라고 생각한다그런데 그가 덧붙인 한 마디가 영화처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미래는 항상 오늘이 아닌, 내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미래가 없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임.) Young people like me every morning wake up realising the future is always tomorrow... " 

그 후 청년은 슬럼가를 지목하였다. 청년의 말에 의하면 그 슬럼가는 라고스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슬럼가를 찾아가서 노래를 하던 여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그 여자는 믿음이 없는 자(unbeliever)를 지목하였다. 종교심이 강한 그 여자는 안 믿는 사람들에게 내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경계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래서 비종교인을 찾아갔더니 그는 또 종교인을 지목하였다. 그의 이유는 누군가를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위기 속의 삶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다리 없는 장애인을 지목하여 왜 하필 다리 없는 장애인지 이유를 물었더니 똑바로 설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그 대답 자체가 굉장히 종교적이면서도 철학적으로 느껴졌다. 다리 없는 장애인을 찾아가서 물었더니 그는 집 없는 사람이라고 지목하였다. 자신은 돌아갈 집이 있지만 홈리스들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홈리스, 잡리스, 호프리스라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라고스의 끝 바다그리(Badagry)라는 마을이었다그곳은 바닷가 끝 쪽의 동네이자 한 때 노예무역을 했던 곳으로  지리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맨 끝인 것이다바다그리에 있는 청년에게  누가 당신이 위기/경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래동의해?”라고 물으니 맞다고 대답해왔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바다그리의 지리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담아 자신이 edge에서 살고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대화를 계속 나누어 보니, 그의 대답이 꼭 그가 살고 있는 그곳의 의미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의 삶이 그랬다. 그의 부모님은 중학교 때 다 돌아가시고, 홀로 남아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그 마을의 관광가이드로 일하면서 축구선수의 꿈을 꾸고 있는, 유럽리그에서 축구선수로 뛸 희망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었던 거다. 그래서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지리적, 역사적 의미뿐만이 아니라 그의 삶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But) not the end of the edge but the beginning of the edge” 그는 여러면에서 edge에서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으나, 동시에 그의 꿈은 그 가장자리에서그 경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시작점이 될 수 있다. 

 

Q 앞으로의 작업 계획은? 

 

거창하지만 레전드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웃음) 글라스코, 세네갈, 라고스처럼 전시 종료와 함께 나의 작품들은 모두 사라진다. 그래서 그걸 본 사람들은 있지만 작품은 없다. 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하나의 이야기로써 회자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작업의 키워드는 스토리텔러이다. 이 키워드는 내가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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