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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이재훈 : 아, 禽獸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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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8-08-13 16:12 조회3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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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 : 아, 禽獸강산

■ 기간 : 2018'년 8월 16일(목) ~ 8월 31일(금)

■ 오프닝 : 2018'년 8월 16일(목) 6 p.m.

■ 장소 : 스페이스 캔(서울시 성북구 선잠로2길 14-4)

■ 후원 : 서울문화재단

■ 주관 : (사)캔파운데이션

 

 

 

금수강산(禽獸江山)을 여유(旅遊)하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가장 힘겹고 고통스럽다 말한다. 인간의 삶속 고통은 정량화할 수 없고, 사람들은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손쉽게 망각한다. 그저 내 눈앞의 상황이 가장 자신의 피부로 직면하기에, 지금의 현실은 우리의 사고와 감각을 지배하기 마련이며, 과거의 기억은 유리된 채 박제되거나 소산되어 잊힌다. 몇 번의 과오를 교훈삼아 과거의 역사기록을 들쳐보며 놀라게 된다. 우리는 항상 똑같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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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스페이스 캔에서 개최되는 이재훈 개인전 <아, 금수강산(禽獸江山)>은 “우리가 살고 있는 비가시적이며 추상적인 사회를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사회를 어떻게 시각화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은 그의 저서 《공간과 장소》를 통해, “공간(space)이란 그 자체로 단지 물리적인 영역을 가리키는 것에 불과하지만, 공간이 가치와 경험을 갖게 되는 순간 그 곳은 장소(place)가 되어 사람의 일상을 바꿔놓는다.”라는 개념을 역설한다. 이에 작가는 ’사회‘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개념에 공간과 장소라는 개념을 적용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기획에 있어 ‘정원(庭園, Gardening)’이라는 가시적 메타포를 전격적으로 기용한다. 이는 사회적 현상과 제도에 대한 인식을 풍경과 정물로 시각화함으로써, 사회를 하나의 물리적 ‘공간’이 아닌 가치와 경험의 ‘장소’로 변화시키고자 함이다. 정원은 대개 울타리와 그 울타리가 에워싸여진 공간에 구성되는 무엇들을 말한다. 그리고 정원을 가꾸는 이들에게 있어 그 구성원리는 하나의 작은 세계이자 우주이다. 일본의 정원양식의 하나인 ‘가레산스이(枯山水, 마른산수)’처럼, 동양정신세계를 표상하는 ‘산수(山水)’가 동양의 정원에서는 주된 콘텐츠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사는 사회를 연상하게 한다. 사고를 더욱 확장하여 되짚어본다면 정원은 인간문명을 형성과 함께한 도시의 구조와 유사하며 작동원리 또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정원이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유기적 구조의 클러스터들이 모인 형태로, 군락생활을 하는 인간사회와 다를 바 없다. 다시 정리하여 말한다면, 작가는 비가시적인 추상적 개념의 형태인 ‘사회’를 ‘정원’이란 물리적 공간으로 전유(Appropriation)하고 있다. 또한 ‘사회’와 ‘정원’은 상반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상반된 지점을 꼬집어내어 개념을 정리한 후, 이른바 ‘제명행위(題銘行爲: 명승지에 자신의 감상과 이름을 바위에 글씨를 새기는 행위)’를 통해 경험적 장소로 치환한다.

작가는 사실, 지금까지의 작업세계에서 ‘제명행위’로써 갖가지 사회적 문제에 대한 본인의 의식을 지속적으로 표명해왔다. 지난 2017년,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개최된 <초원의 결투를 위해>展에서 공간을 압도하는 탑 조형물로써 기념비적 ‘제명행위’의 정점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아, 금수강산(禽獸江山)>展에서는 동양적 관념이 내포된 ‘풍경적 정원’의 방식으로써, 하나의 장소로 전이된 ‘제명행위’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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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캔 1층 공간에는 일종의 ‘마른산수’의 개념으로 전시되는 설치작품들이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 단순히 마치 조악한 산수정원처럼 ‘흉내낸 자연, 혹은 모형화 된 자연’의 형태가 아닌 ‘제명행위’가 부여된 하나의 경험적 장소로서 작용한다. ‘모형’되어진 바위와, 기둥, 보도블록 등은 마치 화석화(化石化)된 듯, 박제된 자연의 행색을 보여준다. 이것은 다분히 고달프고 처연하기 그지없다. 작가가 말하는 ‘사회’처럼,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설치작품에 살짝이라도 손을 댄다면, 즉시 와르르 와해될지도 모르는 구조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졸이게 할 것이다. 무언가 그럴듯하게 번영하는 도시에서 각박하고 숨 가쁜 나날을 보내는 대한민국의 시민이, 잠시나마 자신의 신체를 유체 이탈하여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자신을 포함한 사회전체를 바라보게 된다면? 그 위태로운 사회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감춰낼 수 있을 이는 또한 얼마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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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을 벗어나 계단을 오르면, 2층 전시장을 잇는 벽면에 걸린 <선인장>이란 작품을 올려다보게 된다. 날카롭고 뾰족한, 또한 깨지기 쉬운 각종 오브제들이 모여 마치 선인장과도 같은 기둥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식기, 포크, 나이프, 젓가락, 음식물, 가위·바위·보를 하는 손의 모형 등 갖가지 물건들이 한데 뒤엉켜있음을 알 수 있다. 음식과 음식을 먹기 위한 도구들, 그리고 이를 차지하기 위한 가위·바위·보라는 삼각 먹이사슬이 펼치는 치열한 전투의 향연인 것이다. 이 광경은 마치 인간의 생리적 욕구가 끝없이 응집하여 상승하면서, 일종의 욕망으로 변이되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또한 전체화면을 관통하여 수직으로 뻗어나가며 좌우를 가르는 모습은 관객에게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위압감을 선사하며,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일종의 공포감마저 자아낸다.

 

 

 

2층의 전시실에는 기존의 작가작업과는 결이 다른 회화작품들을 볼 수 있다. 몽환적으로도 보였던 미묘하고도 감각적인 배경색은 제거되고 무채색의 질감과 형상들이 전면적으로 등장하여 우리의 눈에 육박한다. 이 작품들은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들로, 작가의 작품세계가 점차 작가의 철학적 방황을 수렴하고 있는 과정으로 보인다. 지나침과 앞서나감, 혹은 욕심을 덜어내는 작업이 생색나지 않고 묵묵히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단순이 무언(無言)의 돌을 보며 현상에 현혹되는 것이 아닌, 격물(格物)하는 것에 단초를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작가는 무언가를 굳이 변(辯)하려 하지 않고, 변(變)하지 않는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작품 화면에서의 구상 이미지들은 조직화 한다거나 무엇을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느덧 확장된 세계관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을 떠나 존재론적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으로서 전이되었고, 작품표면의 흔적들은 일종의 수행적 노동으로 읽혀지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일군의 신작시리즈는 근대 신문기사들의 이미지를 새긴 설치 조형물들로써 이종의 ‘제명행위’를 소개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0x30 크기의 보도블록을 연상시키는 석화 모형된 입체작품들로, 기존의 건식벽화 방식이 연장되어 적용된 36개의 입체작품이다. 이 작품들에 새겨진 이미지들이 꽤나 흥미롭다. 이미지들은 작가화법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면서도 자연스레 연출된 촉각적 표면으로 인해, 작업들은 마치 고대유물들을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근대화가 시작되던 100여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 그 당시 신문들을 살펴보면 나이브한 이미지의 광고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개화기 시절 그 당시 사회는 자본주의 파고를 직격으로 맞으며 서구문물을 접하게 되었고, 이로 인한 생활양식의 급진적인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들은, 항상 유사한 사회적 현상은 되풀이되고, 내부의 비가시적인 사회적 구조들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도 현대인들의 가장 큰 고민인 일자리 문제, 물질에 대한 욕망, 여성의 사회지위문제, 영어교육열풍, 금융과 부동산 등, 이와 같은 사회현상들의 반복은 결코 사회적 구조가 변화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작가가 이전 작업들을 통해 인간사에 변화하지 않는 속성들을 이미지로 구현하고 그 위에 텍스트를 이용한 직접적인 제명행위를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좀 더 순화된, 혹은 은유적인 형태인 이미지를 빌려오는 방식으로 우회하는 듯하면서도, 이미지를 화석화하는 것으로써 견고하고 촉각적인 형태로 전환하여 보는 이의 감각을 자극시킨다. 이로 말미암아 더욱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가의 전략을 읽어내는 것도 가능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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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정원을 소유할 수 있지만, 자신만의 가치가 투영된 ‘장소’로서의 ‘정원’으로 가꾸어 나가는 일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초보자들은 정원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작업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법칙과 질서를 파악하는 데에도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한 접근에서 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이 사회를 하나의 장소로서, 어떠한 방식을 빌려 의미를 부여하고 조직해야 하는가? 더욱이 한국사회처럼 경쟁이 극심하고 모든 것들이 급격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공간에서, 일방으로 경도되지 않는 가치중립성을 견지하는 ‘장소’로서의 사회 구현은 과연 가능할까? 이러한 의구심을 떨쳐내는 것은 자못 쉽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작가의 변화된 작업태도에서 의미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신시호, CAN Foundation Cu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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