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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 Park, Jina
2017.01 - 2017.12

나는 그림을 그린다. 짧은 순간에 벌어지는 일들, 무슨 일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직전, 변화가 생기는 순간, 이 순간에 혼자 혹은 여럿이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다. 그림은 주변에서 마주치는 것에 대한 약간은 거리 있는 관찰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찰나가 드러나는 일상의 장면은 카메라를 통해 아주 캐주얼한 스냅사진으로 옮겨지고, 이렇게 수집한 몇몇 장면을 조합하여 나는 회화를 구성한다.

 

특정 장면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서 나는 먼저 다소 무책임하게 직관이라 말해 보겠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일 때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다양한 모습이 갑자기 좀 더 생생하게, 무관심의 안개가 걷히듯 드러나곤 하는데 이때 카메라가 순발력 있는 도구로 쓰인다. 그리고 완성한 회화에서 그 모습이 보이길 기대한다. 혹은 내가 회화적 상상을 할 수 있을 때 그 장면이 선택된다고도 할 수 있다. 색과 공간, 회화가 가질 수 있는 시간성, 평평한 화면의 구조 등이 상상될 때 먼저 간단한 에스키스를 하고(단순한 구성일 때 이 과정은 생략되기도 한다) 다시 유화로 옮긴다. 그려지는 인물의 제스처도 중요하다. 손을 들어 올린다던지 고개를 숙인다던지 하는 우리가 끊임없이 반복해서 하는 단순한 동작, 특별한 의미나 상징이 부과되지 않은 평범한 동작, 인물이 무언가에 골몰하는라 자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심코 하는 동작에 나는 이끌린다. 인물들은 약간 단순하고 납작하게 그려진다. 인물이지만 한 인물의 특징을 묘사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초상화로서의 기능은 거의 없고 오히려 풍경화처럼 다루어진다. 아니면 집단초상화라고는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인물은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어정쩡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나는 이렇게 무엇과 무엇의 사이에 낀 동작, 낀 순간, 낀 공간을 좋아한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밤에 소풍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 카페나 식당 같은 도시의 한켠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미술관에서 전시준비를 하고 있는 작가와 큐레이터, 이 외 다양한 미술관련 행사의 스태프들, 공항이라는 중간지대에서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등을 그려왔다.

 

나는 회화가 이미지이면서 물질이기도 하다는 데 큰 매력을 느낀다. 회화는 현실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고 시각적 쾌감을 주는 등 이미지가 할 수 있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지지대 위에 발려진 물감 자체이기 때문에 특히 그리는 과정에서는 물질성을 크게 인지하게 된다. 어떤 화가에게는 이 두 가지 측면이 서로 모순되기에 이 중 한 쪽을 훨씬 강조해 주어야 할 수도 있겠다. 나에게는 이 두 측면을 팽팽하도록 균등하게 동시에 지닐 수 있다는 게 회화매체의 장점으로 보이고 다루어 보고 싶은 동기가 된다. 얇게 여러 층을 쌓아 올리는 유화물감의 사용은 이렇게 이미지이면서 물질인 특징을 담고자하는 기법으로서의 시도라 할 수 있다. 느슨하고 유동적인 붓질은 그리는 과정이 완성된 그림 위에 드러나게 하기 위한 형식이자 그림에 담긴 장면이 흐르고 있는 시간의 찰나일 뿐임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 작가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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