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2008 PSB 창작스튜디오 2기 

대상의 변용을 통한 심적상태의 투영에 관한 작업연구 요약

  지난 2년간 본인에게 있어서 미술이라는 것은 자신을 치유하는 수단이었으며 동시에 세상을 향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방법이었다. 마치 일기를 써내려가듯 작업을 함으로써, 작지만 개인적으로 중요한 이미지 및 단초들을 모아나갔다. 내면의 감성을 은밀하고 사적으로 표현하는 행동들은 곧 버려진 사물들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져 그것들을 고치는 일로 전환되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의미였을 버려진 물건들은 그것이 버려짐과 동시에 존재의 가치도 같이 버려진 듯해 보였으며 이러한 버려진 물건들은 본인이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이입 대상이 되었다. 버려진 물건들을 고치는 작업을 통하여 정리가 된 ‘사물에 개인의 감정을 투사하고 그것을 통하여 상대방과의 소통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은 이번 논문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모태가 되었다.

  본인의 작업을 크게 구분을 해 본다면 공중에 늘여 뜨려진 사슬로 대상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인 <여울져가기>, <절현絶絃>, <그대가 떠난지 21일째>, <내게 남은 그대의 향기>와 구체적 형태를 가진 상에 유리안구를 박아 넣은 것으로 <나와 네가 같다는 것>, <나와 네가 다르다는 것>,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앞으로 논의에서는 서로 다른 듯해 보이는 본인의 2가지 작업의 형식에 대하여 각각 논의한 후 작품들에 나타난 공통된 심상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또한 본인의 작품이 사회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의의에 대하여 정리해 보려 한다. 

  늘어뜨려진 사슬의 집합체로 대상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작업으로서, 대상의 이미지는 남아있지만 그 질료(Matter)를 치환함으로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작업이다. 이미지들은 기둥이나 갑옷, 그리고 비파와 같은 대상이 선택되었다. 선택된 이미지들의 공통점은 현재 그 형태는 전해지기는 하지만 그 존재 의미가 많은 부분 바뀐 것들이다. 기둥은 건물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권위의 상징이었지만 현재에는 건축공법의 발달로 인하여 장식적 역할의 비중이 커졌으며, 갑옷은 더 이상 전쟁에 사용되거나 인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또한 비파는 악기의 형태는 남아있으나 연주법을 잃어버려 더 이상 그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자신의 기능을 잃고 박제된 이미지들은 본인에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향수의 단초가 된다. 본인은 이러한 이미지들을 길게 늘어뜨린 사슬로 표현함으로써 기존의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확대하게 되었다. 유약해 보이기도 하며 유동적인 사슬들은 공간에서 대상의 이미지를 재현한다. 그러한 대상들은 대상의 속성이 아닌 이미지로 인식이 되며 이러한 이미지는 치환된 질료의 속성과의 연상작용으로 인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새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할 수 있는데, 몽환적이며 부유하는 듯한, 그리고 현실적이지 못하고 과거회상적인 심상을 창출한다.

 또한 사슬로 만들어진 대상들은 공간을 차지하는데 있어서도 기존의 존재감을 잃어버린다. 기둥은 더 이상 다른 사물을 지탱하지 못하며 스스로 서있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물에 기대어 있어야 하며, 비파는 소리뿐만 아니라 악기의 형태마저 흩어져 버린다. 갑옷은 인간의 보호수단이 아닌 불편한 껍질처럼 느껴진다.

 사슬이라는 재료로 치환된 대상의 이미지들은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새로운 감각을 접하게 되는데 이러한 감각은 외로움이나 그리움, 혹은 애잔함과 같은 심상으로 귀결된다. 

 누군가가 자신을 응시한다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의 눈동자의 검은자와 흰자의 비율로서 인식을 하기 때문인데, 모나리자가 어디에서 보나 관객을 쳐다본다는 일설은 이러한 이유에서 연유한다. 하지만 3차원의 개체는 보는 방향에 따라 검은자와 흰자의 비율이 바뀌므로 관객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일정한 방향만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본인은 전통적인 3차원적 도상에 유리로 만든 안구를 박아 넣음으로써 안구에 있어서는 2차원적인 효과를 유도하였다. 유리의 안구는 반원형으로 제작된 것으로 안구의 표면에 눈동자가 그려진 것이 아니라 내면에 그려짐으로써 2차원적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유리의 특성상 뒤에 그려진 눈동자는 구면상에 그려진 것처럼 보이는데 이로 인하여 관객이 움직임에 따라 눈동자도 따라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러한 눈동자의 움직임은 소재로 선택된 도상의 위상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데, 전통적으로 말하는 대상중심의 작품에서 관객과의 교류의 차원으로 작업의 접근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나와 네가 같다는 것>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외관상 피렌체의 다비드 형태와 같은 모습이지만, 관객의 이동에 따라 계속 자신을 쳐다보는 듯한 시선은 웅장하거나 숭고한 작품으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눈동자로 인하여 대상이 가지고 있던 도상체계는 전환이 이루어 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전환의 결과로 해석된 도상은 기존의 자신감이나 내부의 완결성이 아닌 내적불안이나 두려움, 고정되지 못한 듯한 심상을 유발하게 된다. 

 사슬을 이용하여 대상의 이미지만 남기고 질료를 치환하는 방식과 전통적 도상에 유리안구를 박아 넣음으로써 해석방식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작업은 짐짓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두 가지 다른 표현방식의 이면에는 고정되지 못하고 부유하며 곧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심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느낌은 기존의 가치체계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다소 아쉬움이나 그리움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소재로 사용된 전통적 도상으로 인하여 역사적인 맥락으로부터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과거에 대한 향수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심상은 아쉬움이나 그리운 논조로 표현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금의 시간과 공간으로 재해석되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기존 도상의 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만 이는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이 아닌, 현실에 대한 반영의 결과이며 본인의 감정을 표현의 결과물로서 나타난다. 

 본인은 불안한 심리상태를 우리에게 익숙한 물질적인 도상을 변형함으로써 나타내 보려고 하였다. 따라서 결과물로서의 작품은 물질적이며 전통적 도상의 소통방식에 기대어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위상의 변화가 크다. 그러한 위상의 변화는 본인이 느끼는 외로움이나 불안등의 심상을 대변해 주는 기재로 사용된다.

  작업을 대하는 본인의 태도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감상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매우 개인적이고 사소한 감정으로부터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본인 작업의 주된 요소 중 하나임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의 기회를 제한시킬 수도 있는 속성이기도 하다. 개인적 특수성이 보편적 타당성을 획득하는 것이 미의 본질이라고 했을 때 본인은 개인적 특수성을 전통적 도상과 가시적 물질로서 보편적인 미의 대상으로 만들기를 택했다. 그러한 미의 대상에 투영된 개인적인 감정은 보편적으로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개인적인 감정은 작업을 통하여 비개인적인 감정으로 전환된다.

 기존의 도상은 도상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개인적 감수성의 표현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표현은 동아시아의 문인화의 맥락 중 임모(臨摹)가 아닌 방(倣)의 작업관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원본을 옆에 두고 그리는 그림(臨이)나 바닥에 깔로 그대로 그리는 그림(摹)이 아닌, 구성적 틀은 간직하고 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개인의 감정 표현에 좀더 충실하다는 것은 전통적 도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사물에 투영된 개인의 감정은 다분히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본인의 작업방식은 각기 다른 형식을 가진 작업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항이다. 또한 전통적 도상을 사용하지만 기존의 도상 해석 방식은 피치 못하게 해석의 방법상 변형을 가져오게 된다. 공유되어오는 가치체계를 사적인 영역으로 범위를 좁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반면 사적인 영역의 세계를 기존의 가치체계를 바탕으로 공적인 영역으로 확대시켰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다만 본인의 작업이 전통적 가치체계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작업의 결과가 전통의 가치에 대한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과 공유되어오는 가치체계라는 것 자체가 인위적이며 시간, 공간적 제약을 많이 받는 개념이기 때문에 그것 역시 거시적으로 보면 보편적으로 타당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은 좀더 심사숙고해야 할 점이다.

(2008 작가노트 중)

2019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서울, 한국
2007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조각전공, 서울, 한국
2005 학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서울, 한국
2005 학사, 서울대학교 조소과, 서울, 한국

Solo Exhibition (Selected)
2019 《어떤 아이들은 평범해지길 꿈꾼다》, 갤러리 도스, 서울, 한국
2016 《진주》, 플라스크, 서울, 한국
2012 《Someday》, 스페이스 캔, 베이징, 중국
2011 《여기가 아닌, 어딘가》, 구로문화재단, 서울, 한국
2009 《우리가 모르는 거짓말》, 카이스갤러리, 서울, 한국
2008 《알고 있지만 알고 싶지 않은 Between You & I》, 브레인팩토리, 서울, 한국
2007 《Vanished》, 송은, 서울, 한국
2007 《3240개의 기억》, 갤러리 팡코, 서울, 한국

Group Exhibition (Selected)
2025 《Sudden Attack》, MO BY CAN, 서울, 한국
2018 《얼굴보다 작은》, 플라스크, 서울, 한국
2017 《Wood Works Today》, 김세중 미술관, 서울, 한국
2016 《광야전》, 인천가톨릭대학, 인천, 한국
2015 《무심전》, 소마드로잉센터, 서울, 한국
2015 《버스에서의 만찬》, 스페이스 캔, 서울, 한국
2015 《CH자연미술제》, 장흥자연휴양림, 양주, 한국
2015 《장밋빛 인생》, AK갤러리, 수원, 한국
2014 《Affinity 90》, 갤러리 조선, 서울, 한국
2014 《이야기하는 사물》, 신세계 갤러리, 광주, 한국/신세계 갤러리, 부산, 한국

Residency
2008-2009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5기>,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고양, 한국
2008 <Project Space in Beijing>, 스페이스 캔, 베이징, 중국

Award
2012 <유망작가 프로젝트 지원사업>, 경기문화재단, 수원, 한국
2011-2012 <예술인력 집중육성지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 한국
2009 <젊은 작가 선정>, 고양문화재단, 고양, 한국
2008 <NarT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 선정>, 서울문화재단, 서울, 한국
2008 <전시지원작가 선정>, 송은, 서울, 한국
2008 <전시 선정 작가>, 브레인팩토리, 서울, 한국
2007 <중앙미술대전 올해의 선정작가>, 중앙일보, 서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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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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