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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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은의 회화가 보여주는 것은 비교적 명확하다. 그것은 작가가 직접 보고 겪은 어떤 풍경인데, 보다 정확하게는 풍경

으로부터 한걸음 더 침투함으로써 발견되는 ‘장면’이다. 장면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프레이밍으로 포착되고 확대된 특정

한 이미지를 뜻한다. 그리고 그가 포착하는 것은 형태를 끊임없이 유동적인것으로 만드는 힘의 영역이다. 말하자면, 작가

의 신중하고 반복적인 응시와 관찰은 형태가 구축된 가시적인 풍경 속에서 형태를 구축하는 힘이 영향을 발휘하는 특수

한 시간을 찾아낸다. 그리고 여기에는 대체로 구멍이라는 장치가 연루되어 있다. 이것은 길에 파여 있는 웅덩이나 터

널, 혹은 갈라진 틈처럼 구체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구멍을 찾는 두 눈은 특정 장면를 구조적으로 만드는 비가시적인 규

칙을 응시한다. 때문에 작가가 가져온 장면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

는 것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부수적인 것이다. 이와 같은 질문이 장소의 개념을 전제하는 것이라면, 김세은

의 장면은 공간에 대한 사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전자가 의미로 규정되고 환원된다면, 후자는 의미를 지연시키고 갱신

한다. 구멍은 형태의 관계를 다루는, 사물의 위치를 배열하는, 풍경의 유동성을 조정하는 매개변수이며 의미론적으로 환

원되지 않는다. 

구멍은 형태의 변화에 관여하는 주요한 힘이자 증거이고, 김세은은 회화라는 방법을 통해 그 힘의 영역의 원본 질서

를 다시 세운다. 그의 그림은 특정한 지속동안 유동했던, 유동하는, 그리고 유동할 형태를 가시화한다. 얇게 펴 발라진 해

상도 낮은 레이어의 중첩을 통해 수많은 시제는 동시에 그리고 단번에 등장하며 하나의 화면을 완성한다. 즉 동시간성

은 고정된 형태를 부정하며 현실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김세은이 회화를 통해 수행하는 것은 이와 같은 조형의 과정이

며, 그것은 캔버스 앞에 마주 선 작가 자신의 신체에 의해서, 스스로 그 조건을 자각하고 가동시키면서 이루어진다. 

이한범.「형태와 구멍」. 개인전 <핏맨의 선택>, 원앤제이 갤러리, 2019, 전시 텍스트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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