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으는혹은 아니 날으는 들꽃의 유희  

이상선의 회화는 편안하면서도 강렬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즉 아이는 관객과 바로 만난다. 캔버스 밖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이의 눈은 마치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당신의 생각을 알고 있노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아이의 까만 눈동자를 계속 쳐다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왜일까? 왜 서정적이고 편안한 화면에서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일까? 불편함, 작가 이상선의 아름다운 캔버스에서 느껴지는 이 감정이 바로 그의 작품이 가진 힘이다. 그의 작품은 모두 兒孩(아해)로부터 시작한다. 그가 시인 이상(李箱)의 문학작품에 심취해 있고, 이상의 문학적 감수성을 회화작품에 표현한다는 것은 그의 작품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학창시절 유난히도 어려웠던 이상의 시 <오감도>의 제1호 ‘13인의 兒孩’는 아직도 여전히 해석과 분석의 대상이다. 이상의 시에서 ‘무서운아해와 무서워하는아해’, ‘질주와 아니 질주’ 사이의 간극(間隙), 그 간극이 바로 이상선의 회화작품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상선은 아이를 그린다. 그 아이는 관객들을 물끄러미 (꼴아)본다. 아이의 눈과 나의 시선이 만나는 그 순간 나는 살며시 아이의 까만 눈을 피해 캔버스 전체를 살피게 된다. 천진난만한 아이는 못된 표정을 지으면서 ‘나 지금 화났어’라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이상선은 바로 이러한 아이의 표정에 주목한다. 아이의 즉각적인 감정표현에서 드러나는 바로 ‘지금’의 모습, 그 모습을 순수함이라 정의한다면 우리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해맑은 천진난만함의 범위는 다시 수정되어야 한다. 불편함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이의 ‘지금’과 어른이 된 관객의 ‘감춰진, 혹은 고정된 지금’ 사이에서 오는 간극이 바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모순과 부조리, 아이의 천진함을 잃어버린, 아니 애써 감춰버린 현재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아이는 관객들을 꼴아본다. 아이가 우리를 바라보는 것일까? 아님 우리가 아이를 바라보는 것일까? 바라봄의 주체와 보임의 객체는 결코 양분될 수 없다. ‘무서운아해와 무서워하는아해’는 이렇게 교차된다. 

아이의 눈에 비친 나의 불편함을 피해 캔버스 전체로 가보자. 거기엔 배경이라 부를만한 흔적들이 있고, 들꽃들이 흩날린다. 이상선의 문학적 감수성은 바로 여기, 흔적과 흩날리는 들꽃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먼저 그에게 흔적이란 배경을 지워버리는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차례의 붓 자국이다. 그 작업은 그가 인물을 드러내기 위해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오는 자기정화의 시간과도 같다. 나는 이 정화를 시인 이상의 시를 해석, 감상하는 작가 이상선의 문학적인 취미라 부르고 싶다. 수차례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여 나온 것이 바로 뭉클거리는 배경, 즉 흔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배경이여도 되고 아니어도 된다. 즉, ‘질주와 아니 질주’의 물음들을 하얀 눈들, 혹은 흔적들로 덮어버린다. 이쯤 되면 작가 이상선이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그는 아이와 어른의 눈, 사실(배경)과 이미지(환영)의 이중구조에서 오는 풀어헤쳐진 의미 층을 서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간극을 무엇보다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날으는 들꽃’이다. 그에게 꽃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바람꽃이라고 불리는 들꽃은 봄에 우리나라 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꽃이다. 화려함과 소박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들꽃의 의미를 작가 이상선은 캔버스 화면에 흩뿌려 놓는다. 아니 그것은 흩뿌린다기보다 날으게 둔다라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날으는’이라는 표현에는 회화가 가진 평면성과 입체적 효과 사이를 가로지르는 가벼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그 가벼움은 결코 우연적인 흩날림이 아니다. 작가는 그림을 다 그린다음 화면상에서의 구조를 생각하여 들꽃을 그린다. 들꽃은 아이의 머리위에 살며시 내려앉거나 혹은 화면의 표면에서 흩날린다. 즉, 들꽃은 아이라는 대상에 관여하거나 아이를 그린 캔버스를 벗어나 평면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작가는 들꽃을 통해 바람, 혹은 공기의 흐름을 작품에 표현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각각의 사물들이 가진 의미들을 편안하게 흩트려 놓는 것이다. 아이와 어른의 시선, 사실과 이미지, 입체와 평면, 겨울과 봄 등 이중적인 간극에서 오는 여러 해석의 가능성들을 작가는 마치 들꽃이 날듯이 공기에 흐름에 내맡겨 버린다. 이것이 바로 작가 이상선의 회화가 가진 힘이다. 마치 이상의 시가 함축적인 난해함으로 인해 더욱 가치가 있듯이, 나는 작가 이상선의 들꽃이 공기 중에 흩뿌려짐으로써 그 의미가 더욱 자유로워짐을 화면에서 재차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날아도 되고 아니 날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