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 재생프로젝트, 그 두 번째 이야기.빛 바랜 공간에 예술적 색채를 입히다.

고급 주택가와 재개발지역이 공존하는 성북동, 그 가운데 낡은 기와가 얹혀있는 단층 가옥이 있다. 빗물이 새는 구멍 난 천장, 짙은 곰팡내, 켜켜이 쌓여있는 빛 바랜 벽지, 그야말로 ‘오래된 집’이다. 한눈에 봐도 낡은 이 공간을 작가의 창작 활동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9년 9월, 오래된 집 재생프로젝트는 기획되었고, 문영미, 변시재 작가가 그 해 첫 입주 작가로 선정되었다. 두 작가는 삐걱거리는 문을 비롯해 이 공간의 여러 곳을 고쳐가며 오래된 집을 주거를 위한 공간에서 창작을 위한 공간으로 재생시켰고, 두 작가의 숨결과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공간을 2010년 11월, 김보아, 이다 작가가 채움으로써 오래된 집 재생프로젝트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공간 본래의 의미와 역할이 달라진 오래된 집이 어떻게,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되어 나아가고 있는지, 변시재, 문영미 작가의 흔적 위에 또 다른 예술적 색채를 입힌 김보아 이다 작가의 공간을 들여다보자! 

오래된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과 흔적을 자신의 기억과 공유해 영상설치 작업으로 풀어낸 변시재 작가의 공간 62-10번지는 이다 작가의, 오래된 집의 외관을 그려온 문영미 작가의 흔적이 있는 62-11번지는 김보아 작가의 작품으로 덮였다. 대중매체에서 채집된 원본의 이미지를 최소한의 선으로만 단순화시키는 작업을 해왔던 이다 작가는, 작업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던 시점에 오래된 집에 입주하게 되었다. 작가는 일상적이지 않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오래된 집을 철저하게 관찰자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벽지를 벗기면 벗길수록 켜켜이 쌓여있는 축적된 시간성이 드러나는 오래된 집에서의 체험과 공간이 갖는 구조적 특성을 여러 가닥의 실과 톤 다운된 핑크, 어두운 와인컬러, 회색으로 된 세가지 색깔의 선 테이프로 중첩시키고, 나무 몰딩을 이용하여 구조를 나누는 작업을 하였다. 이다 작가는 공간을 드로잉 하면서 채우면 채울수록 채워지기는커녕 새로운 공간이 탄생하고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오래된 집 내에서의 작품 제작 과정은 이전의 작업에서 대중매체에서 읽혀지는 코드를 찾듯이, 공간에 레이어드 된 구조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공간의 구조를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거나,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작업해왔던 김보아 작가는, 거주자로서 생활하듯이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체험하고 경험하면서 얻은 영감으로 제작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네모난 형태로 된 공간이 크게 4개로 나뉘어진 62-11번지에 작가가 머물렀던 공간의 시간과 감성에 따라 작업 컨셉을 다르게 하였다. 62-11번지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공간에는, 벽과 바닥, 천장, 창문 틈 사이로 오래된 집에 기생하는 생명체 혹은 오래된 곰팡이 같은 불규칙한 형상들이 설치되었다. 이 곳은 작가가 작품구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간인 만큼, 공간에 머물면서 생겨난 일들로 인해 커져가는 작가의 상념이나 사념들을 자라나는 생명체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작가는 건너편 다른 공간 벽의 뜯겨나간 벽지에서 발견한 지도의 형상을 파라다이스가 있는 보물지도로 보고,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나 기대감을 화려한 밀레피오리(millefiori)로 재현함으로써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느끼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설렘을 표현하였다. 이렇게 김보아 작가는 오래된 집에서 머무는 동안 생겨나는 상념과 자신의 심리상태를 동일시하여 감성적으로 표출 해내고 있다. 즉, 단순히 오래된 집에서 제작한 작품을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집에서의 생활이 작업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전 작업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이었다

입주하자마자 유난히도 추워졌던 긴 겨울을 보낸 두 작가는, 추웠던 겨울을 이겨낸 만큼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낡고 오래된 집에서 보낸 시간을 고스란히 작업에서 풀어내었다. 두 작가에게 오래된 집 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간은, 비록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거주자로서, 그리고 관찰자로서 지내오면서, 가보지 못한 세계를 체험한 시간이었다. 그것은 낡고 오래된 집이 주는 불편함을 몸으로 직접 겪으면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감성이 작품의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촉매작용을 했으리라, 그리고 그만큼 내적으로 더 깊이 있는 고민의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첫 프로젝트의 입주작가였던 변시재, 문영미작가가 예술적 공간으로의 재생을 가능케 하였다면, 두 번째 입주한 김보아, 이다 작가는 좀더 오래된 집이 갖는 의미와 구조에 대해 깊이 관찰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