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와 이주 (Residents and Migrants) 

주거지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자연적 주거형성지와 정책적 주거형성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자연적 주거형성지는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생존에 유리한 환경에 따라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주거지역을 말하고, 정책적 주거형성지는 국가와 도시가 형성되면서부터 소극적, 적극적인 방법으로 계획된 주거지역을 말한다. 여기서 적극적인 주거 정책은 유럽의 산업혁명 이후, 도시 재정비 즉, 재개발이라는 개념으로 변화를 갖기 시작하였는데, ‘도시 기능의 회복이 필요하거나 주거환경이 불량한 지역을 계획적으로 정비하여,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주거생활의 질을 높이는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법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도시 재정비 사업은 곧 거주자의 더 낳은 생활과 환경을 제공하는 데에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거주자들에게는 주거의 위협과 이주의 타당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고 작은 갈등의 발단이 되어지고 있다. 

송성진은 오랫동안, 자연적으로 혹은 계획적으로 형성된 주거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하여 왔다. 특히, 공동주택의 형성과 철거에 대한 이슈는 그의 작품에 끊임 없는 모티브가 되어 왔으며, 그의 작품은 그 과정에서 겪는 간극들에 대한 서술적 기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주택정책이 가져다 주는 ‘틈’은 비단 사회 정책과 개인의 요구에 대한 간격이 아니라, 사회와 개인을 포함한, 시간과 공간, 과거와 미래, 기억과 망각, 희망과 절망, 거주와 이주, 정착과 유목 그리고 소통과 단절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틈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사회성이 강하나 비판적이지 않고 개인성이 깊으나 감성적이지 않는 어떤 중립적 위치에서 기술하는 듯한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 송성진의 이전 작업인 <용호농장 시리즈>와 <문화주택 시리즈>는 공동체적 성격이 강한 주거형태로서 이제는 도시 재개발의 정책으로 사라져버린 공간들을 소재로 한 작품시리즈이다. 송성진은 이 공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에 의존하는 방법으로 소재를 재현하였으나, 그 집단적 기억이라는 것은 획일화 된 것이 아니라 각각의 경험이나 기억에 의해 다양한 방법으로 재현된 공통된 기억이라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거주와 이주 시리즈>는 작가가 베이징 헤이차오 지역에 머물면서 채집한 주변 주거지의 모습을 재편집한 것이다. 사회주의 시기에 어떠한 목적을 가진 정책으로 형성 되어진 이 공동주택들은 이제 또 다른 목적의 정책으로 철거 위기에 놓인 공간들이다. 작가는 베이징 변두리로부터 시작되는 재개발의 현장을 뷰파인더에 담으면서 거주와 이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이미지를 통해 서술하고 있다. 작가에게 ‘거주 residents’라는 의미는, 삶을 담고 있는 함축된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베이징의 근대 주거양식은 정책상 공동주택의 형식으로, 구성원간의 삶을 공유하는 공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의 소재가 되었던 헤이차오(黑橋)지역은 베이징의 서민층 중에서도 환경이 열악한 노동자들의 주거지역으로써, 중국 소시민의 꾸밈 없는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넉넉하지 못한 내부 공간으로, 그들의 생활은 외부로 연결이 되어 있고, 많은 부분을 이웃과 공유하고 있다. 문을 열기 전에는 전혀 들여다 볼 수 없는 공간이지만, 일단 마음을 열고 문을 열어 보이면 세밀한 부분까지 모두 엿 볼 수 있는 중국 서민들의 문화를 반영한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곧, 서민들의 주거공간은 생활을 대변하는 공간으로 사회정책, 직업, 민족, 구성원, 생활방식 등 개인을 삶을 특정 지어주는 많은 요소들이 함축되어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공간인 것이다. 반면, 작가에게 ‘이주 migrants’라는 것은, 식량을 찾아 떠돌아 다니던 과거의 유목민처럼 자본과 정책에 떠밀러 떠돌아 다니는 현대사회의 ‘노마드 nomad’에 대한 서술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주거가 개선이 되어도 혜택 받지 못하는 원주민들은 도시 밖으로 이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안정되었던 기억의 주거지를 찾아 도시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 것이며, 개선된 주거를 꿈꾸는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 될 것이다. 거주지의 이동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도시생활의 양식(樣式)을 유지하려는 현대인들의 생존 방법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이와 같이, ‘거주와 이주’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며 대립되는 행동양식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 삶과 생존이라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두 가지의 방법일 뿐인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이중적인 해석을 중첩하는 방법으로 ‘거주와 이주’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였는데, 이미지의 합성과 재조합을 통한 ‘거주지(공간)의 이주’가 그것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도시 구석의 거친 공간으로, 작가는 철거 위기에 놓인 노후한 주거공간을 통째로 옮겨 놓아 매우 부자연스러운 공간을 연출하였는데, 이는 미개발지역의 보존과 폐주거지의 보존을 동시에 시사하는 반면, 어색한 조합을 통한 불균형의 조화를 은밀히 보여주고 있다. 

개발 위기에 놓인 헤이차오의 공동주택 작업은 송성진이 이전에 진행해왔던 도시 주거지의 연장선의 작업이지만, 서로 다른 문화환경과 낯선 생활방식을 가진 중국의 현장에서 이루어 졌다는 점과, 한국과 중국, 과거와 오늘, 사회와 개인, 개발과 보존의 간극 사이에서 오버랩 되어지는 공통된 사실들이 기록되어 졌다는 점을 주목해 볼 수 있겠다. 현실에 존재하는, 그렇지만 편집되어진 헤이차오의 주택들은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기억으로 남을 것이며, 새로운 삶의 방법을 탐구하는 작가는 익숙한 폐허의 현장으로 혹은 낯선 안식처로서 그 현장을 기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