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뇌르(Flaneur)는 한가롭게 거리를 거니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이다. 19세기 중반 거대한 도시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파리는 커다란 도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중세의 낡은 도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높은 건물들과, 넓은 도로, 고급스러운 카페와 레스토랑, 극장 등이 생겨났다. 도시 전체의 외향적인 모습이 변하면서 사람들의 터전도 변하였고, 그들의 생활도 낯선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변화하는 파리의 도시적 현상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가리켜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는 ‘플라뇌르(Flanuer, 산책하는 사람)’이라 지칭하였다. 도시 공간이 삶을 살아가기 위한 터전이 아니라 바라보는 대상으로서의 풍경이 되었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과 분리된 채 변화하는 도시 풍경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관람자가 되어 있었다. 김홍식의 작업은 이 시대의 ‘플라뇌르’로서 현대 도시가 겪고 있는 변화와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현대성이 실현되는 장소로서의 도시를 탐구하고 이해하고자 한다.

김홍식의 작업은 ‘도시’라는 관찰의 대상과 ‘산책자(플라뇌르)’라는 관찰의 주체 사이에 존재하는 기억과 흔적을 기록하는 과정에 있다. 현대사회에서 ‘도시’란 생산과 소비, 자본과 기술, 정책과 권력으로 인한 인위적 공간을 형성하며, 꾸준한 도시의 발달은 끊임없는 인구의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대단위 인구집단으로 이루어진 ‘도시’는 반대로 인간에 대한 이질적 요소들을 대량 내포하고 있어, 소외와 단절, 그리고 소통과 조화가 동시에 존재하며, 인간의 주체적 역할과 객체성이 교차되고 있다. 이러한 도시의 이중성은 그 안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함과 동시에 낯설음을, 소속감과 동시에 소외감을 가져다 주며,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인한 상실감과 욕망을 제공하고 있다. 이 도시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은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이중성 혹은 다양성의 미려한 경계를 읽는 일이며, 예술 행위를 통해 그 현재성을 보존하는 일이다. ‘플라뇌르’로서 도시를 관찰하는 일은 객관성과 익명성을 요구한다. 도시에 생활터전을 가지고 일상을 경험하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으나,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 그 동안 무의식적으로 거부하였던 낯선 모습들과 무심코 지나쳤던 하찮은 흔적들, 혹은 너무나 익숙하여 의식하지 못했던 매우 평범한 일상의 새로운 이면을 발견하게 된다. ‘플라뇌르’는 특정한 목적을 두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산책을 하듯 끊임 없이 움직이는 도시의 순간을 포착하고, 왜곡되지 않은 모습으로 기억한다. 도시는 중심의 것에서 주변의 것으로, 관찰자는 주체적 위치에서 객관적 시선으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기억과 감성의 경험을 각인시킨다. 이는 김홍식의 작업이 일련의 기억과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재현과 기록(다큐멘터리)이 아닌 예술로서의 가치를 갖는 이유가 될 것이다. 

김홍식은 ‘도시’의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1차적으로 기록한다. 영상으로 기록된 도시 이미지들은 그 후 필름으로 감광이 되고, 스테인레스스틸 판이나 아연 판에 안착되어 금속을 부식시킨다. 부식된 금속 판은 다시 종이에 이미지를 인쇄하는 과정을 거친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의 눈으로 관찰된 도시는 영상과 필름, 금속판과 인쇄물의 형태로 제작되는 과정을 통해, 파지티브와 네가티브의 반복을 겪는데, 어찌보면 이는 ‘도시’의 표면과 내면을 상실과 회복을, 숨겨진 것과 드러나는 것을, 그리고 이 도시의 희망과 불안의 경계를 보여주는 듯 하다. 특히, 김홍식의 작업에서 금속판은 결과물을 얻기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도시의 기록물로서 제안하고 있다. 스테인레스스틸이나 아연과 같은 금속은 도시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기에 매우 적합한 재료로서, 표면은 차갑고 무거워 보이지만, 산화되는 과정은 매우 유연하고 흔적을 깊이 각인하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 산화된 금속 판은, 또한 서로 다른 형태의 무수한 공간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금속판이 포함하고 있는 미시적(微視的) 공간과, 표현하고 있는 거시적(巨視的) 공간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도시’는 현대인에게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기회를 가져다 주며, 그로 인한 욕망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김홍식의 도시가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그 도시 안에서의 익숙한 경험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주 작은 차이를 극복하는 일은 도시 안에 보이지 않게 이뤄진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며, 타인과 소통하는 통로를 찾는 일이며, 숨겨진 자아를 발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캔파운데이션 실장 민은주